또 다른 풍경

글. 이유진


오늘날 많은 이들이 개인적 차원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추구한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삶을 예민하게 감내하는 것보다 당장의 위로와 행복을 찾으려는 갈망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설정된 가치, 목표, 경쟁논리와 같은 것들에 가려졌던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우선시됨에 따라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갈망은 그 어느때보다 가치순위의 앞쪽에 자리잡았다. 우리는 강준석의 작업을 이러한 시대분위기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그간 주요 개인전들 Pili Aloha(2021), My Mate(2021-2), Ever Yours(2022)를 통해 다양한 인물들과 풍경들을 보여주었다. 이를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간략화된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단순하고 귀여운 그림일테지만 초기의 작업에서부터 그는 늘 그의 내면을 작품에 담았고, ‘마음의 안정’이라는 주제를 충실히 작업으로 이어왔다. 작업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투영된 내면세계, 스스로 안정감을 느끼는 심리적 장소의 개념은 강준석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스티븐 그로스의 저서 ‘Examined Life: How to lose and find ourselves’ 에는 자신만의 정서적 안녕을 찾는 방법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그와 상담을 했던 한 남자는 불안해질때마다 늘 프랑스에 있는 집을 떠올린다고 했다.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집은 들판과 숲에 둘러싸인 평범한 농가이지만, 그가 지금 살고 있는 런던의 집과 달리 소음도 없고 소란스러움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프랑스에 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강준석의 캔버스는 마치 이 프랑스의 목가적인 집과 같은 것이다. 강준석은 현실과 상상 두 계층의 결합으로 구성된 혼성공간을 만들고 그가 삶에서 감각을 주고받은 소재들을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독특한 형식을 발전시켰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과정을 ‘기억과 상상에 의존한 산책’ 이라고 설명한다. ‘기억과 상상에 의존한’이라는 수식어을 붙인 것은 그의 회화적 표현이 그의 내면세계의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의 내면 속 가공된 현실과 여러 인상들이 캔버스의 화면 구성과 색채로 반영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산책’ 이라는 단어선택은 작업의 직접적인 동기가 어떻든 그가 작업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작업이 그에게 어떤의미인지를 알려준다. 그는 자신의 내면 다시말해 정서적으로 가공된 그만의 세상을 산책/탐색하며, 현실(외부)-내면(내부) 사이의 상호완성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작업을 정의해가고 있다.

흔히 관객은 작품을 보며 각자의 관점을 동원해 작품에 대해 감상하고 평가하기 마련이지만 강준석의 회화는 우리를 닮은 내적 유사성으로 관객의 공감을 얻는다. 작품이 이야기하는 개념과 감정이 관람자에 대한 것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추구하는 혹은 추구되었으나 현실에 힘이 부쳐 망각된 꿈으로 이끈다. 이러한 환기성은 관람자 내면의 동요를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2021-23 커다란 눈동자로 캔버스 밖을 응시하는 인물을 그려낸 일련의 인물화작업들은 고요한 시선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관객이 작품을 바라보는 주체가 아닌 작품 속 인물에게 보여지는 객체로 만들며 관람자에게 미묘한 감정을 부여하였다. 작가에 따르면 이 시리즈의 작업은 작품 속 인물-관람자 사이의 대화형식으로 작업하였으며, ‘ Where are we going, What are we doing, What are we looking for’라는 380x210 cm 화폭의 작품으로 귀결되었다. 작품의 제목은 강준석이 내면에 품고 있는 본질적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물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며, 고찰해야하는 것이다.

강준석은 이제 우리를 그가 가진 내면의 장소로 이끈다. 2023년 12월 ‘Mindscape’ 이라는 전시명 아래 구성된 작품들에서 작가는 자신이 꿈꾸는 소재를 그대로 내용으로 취하며 작업에 낭만적 특징을 더했다. 그의 대화상대는 자신으로 돌아와,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형태의 화면으로 그려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의식의 실현욕구에 기초한 파편적 단상들을 재현하고, 이를 관객이 들여다보게 하며 다수의 해석을 허용한다. 구성면에서 작가는 여러 순간들을 관조하는듯한 장면을 그려내었는데, 전시작품들을 보다 보면 모든 작품이 하나의 범주 안에 느슨히 엮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작품이 가지는 서로 다른 제재 그리고 표현상의 간극에도 통일된 전체로 제시되는 것은 그간 작가의 여러 작업들 속에 크고 작은 자리를 차지해온 시각적 지표들의 총체적 풍경이며, 이전 작업들 로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정 형상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세계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를테면 ‘Bird’s house,2023’의 작은 새는 ‘Bird dropping seed, 2023’, ’Fly Up, 2022’, ‘On the Road-1, 2022’ 등의 작품에도 반복 등장하며 작품 간에 일종의 링크를 형성한다. 작업전반에 걸쳐 각각의 요소들이 다른 요소들에 의해 스며들고 서로 연관되어지는 그의 방식은 개별 작품들을 아우르는 서사를 상상하게끔 하는 독특한 이스터에그로 작동한다.

형식적인 면에서 강준석 회화를 특징 짓는 것은 선적인 이미지의 단순성, 부드러운 감성의 색채, 3차원적인 환영이 배제된 평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들이 조형적으로 보기 좋게 어우러진 그의 화면은 우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편안한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색을 온화하게 처리하는 방식은 그가 오랜 시간 갈고 닦은 회화적 테크닉과 그가 가진 색채의 기호가 모두 적용된 것이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색이 자연의 색-빛에 산란되어 비치는 초록 잎과 대지의 다채로운 색조- 인 점에서 강준석이 거주지인 제주의 환경에서 많은 인상과 영감을 받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옅은 농담으로 제조한 물감을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는 붓질의 축적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번에 발표한 신작들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전반적으로 색상범위를 축소시킨 것인데, 걸어가는 소년을 묘사한 ‘Boy Leaping’에서 그림의 주조를 이루는 오렌지 컬러는 꿈꾸는 듯한 인상을 강조한다. 소년의 걸음은 작가가 꿈꾸는 ‘도약’에 대한 표상이다.  땅을 딛고 나아가는 소년의 튼튼한 다리에서 느껴지는 강인함과는 대조적으로 들판 위 집과 원형의 작은 소용돌이들은 비현실적으로 작게 표현되어 관람자는 이것이 꿈의 장면임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작가는 환상을 안정적인 손길로 섞고 엮어 현실과 비현실 그 어디 즘일 듯한 장면들을 그려낸다. 우리 눈 앞에 놓인 이미지들은 강준석이 꿈꾸는 것에 대한 기록이며, 결국 꿈의 세계는 현실의 변용이라는 점에서 꿈의 탐색은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닌 현실을 더 잘살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꿈꾸는가. 강준석은 현재의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또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그의 상상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시선을 외적인 것에서 자기자신에에게로 향하도록 하는 매개항이 되어준다.

별볼일 없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가치를 상실한다. 현실에서 여타 많은 실질적인 것들에 비해 정신적인것, 내면이 일순위가 아니게 되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것은 차치되고, 가치를 부여받은 것은 좇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강준석이 가치를 두는 지점은 작가의 외부가 아니라 그의 내면에 있다. 결국 우리는 그의 내면의 비전, another landscape 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관객은 도로시가 토네이도에 휩쓸린 후 방문을 열었을때 또다른 세계가 펼쳐졌던 순간이나, 앨리스가 몸이 작아지는 물약을 먹고 작은 문을 통해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순간처럼 강준석의 세계로 초대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를 감각하며 잊고 있었던 기억 혹은 내면의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다.